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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태권도] 태권 패밀리 _천태은 수련생 가족편_ 본문
[가족태권도] 태권 패밀리 _천태은 수련생 가족편_
To. 사랑하는 석중, 그리고 지훈에게....
▲좌측 부터 천태은씨 남편, 천태은씨, 아들 지훈이
먼저 중요한 약속을 바꾸면서까지 승단식에 와줘서 정말 고마웠다는 인사부터 할게요. 힘든 부탁인 줄 알면서도 꼭 와 달라고 했던 건 당신에게만은 정말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태권도를 시작한 처음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당신과 지훈이에게...
사범님으로부터 흰 띠부터 검은 띠까지의 시간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보았지만 두어 줄만 쓰면 막히기를 수차례... 이런 저런 시도 끝에 문득 당신과 지훈이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니 글이 술술 풀려 나가더군요. 몸으로 하는 태권도는 나와 지훈이만 했지만 마음으로 하는 태권도는 우리 세 가족이 항상 같이 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어요. 고민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며 울고 웃었던 긴 시간을 생각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소중한 추억들...
지훈 아빠, 잊지 않고 있죠? 내가 어떻게 태권도를 시작했는지... “여보, 내가 태권도에 대해 알면 태권도를 어려워하는 지훈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운동 삼아 하면 나도 지금보다 건강해질 거고... 그런데 이 나이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아... 어떡하지? 일단 해 보고 안 되겠으면 그만 둘까?...” 이렇게 숱하게 고민하고 재어 보다가 마침내 시작하겠다고 결심을 굳혔을 때 나를 보던 당신의 촉촉한 눈빛... ‘태은아, 미안하고... 고마워...’
그렇게 온갖 걱정을 안고 시작한 태권도였어요. 처음 ‘천태은’ 이라 새겨진 도복을 들고 집에 온 날, 제 도복 옆에 내 도복을 나란히 두고 뛸 듯이 기뻐하는 지훈이를 보니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요. 엄마가 태권도를 같이 한다는 게 그렇게 좋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나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어 거울 보는 것조차 민망한 도복 맵시였건만, 엄지손가락 높이 치켜 올리며 멋지다고 나를 격려해주던 당신... 그런 지훈이와 당신을 보며 나는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천태은씨 흰 띠 첫 심사 첫줄 왼쪽에서 두번째
승단식 마치고 나오며 당신이 말했죠, “태은아, 너, 관장님 말씀하실 때 우는 것 같더라... 그래, 내가 네 마음 알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맞아요, 이 나이에 주책맞게 터져 나오는 울음 참느라 애 좀 썼네요. 관장님께서 승단자들에게 “시작한 지 장장 이년. 이년 동안 왜 어려운 일이 없었겠습니까. 이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한 가지를 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을 때, 주변에서 도와주고 지도진들께서 도와주셔서 이 자리까지 오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하시는데, 관장님 말씀 따라서 내가 걸어 온 그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더라구요.
▲승단식 모습
당신도 기억할 거예요. “여보, 나... 태권도... 너무 어려워... 발차기랑 격파는 정말 나랑 안 맞아. 이 나이에 할 운동은 아니지 싶어.” 이런 말들을 달고 살았던 것... 흰 띠 심사 때였죠. 다들 한 번에 퍽퍽 깨는 앞차기 격파를 혼자 실패하고 나니 트라우마가 생겼던 걸까요? 정말이지 송판만 보면 딱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게다가 다리는 어쩜 그리 뻣뻣해서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지... 딴에는 열심히 차는 데도 결과는 바닥을 훑고 있는 내 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툭하면 투정을 부리던 내게 당신은 단 한 번도 “어렵게 시작했는데, 검은 띠는 따야지 않아?” 했던 적이 없어요. “그래, 네가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해...” 했지요. 이상하게 당신이 그러니까 나는 더더욱 태권도를 그만 둘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엄마, 나는 검은 띠 꼭 딸 건데, 엄마는 못 따도 괜찮아? 아아~아아~ 엄마, 나랑 같이 계속 태권도 하자~” 하는 아들보다 당신의 그 말이 더 큰 자극이 되었으니 내가 청개구리인 건 분명하죠? 후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요? 하지만 태권도는 정말 욕심처럼 안 되더라구요. 같이 하는 노란띠, 초록띠, 검은띠 분들은 다들 잘하시는데 왜 나만 이렇게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나를 참 많이 힘들 게 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태권도를 시작한 초기에는 어쩜 그리 여기저기 뭉치고 쑤시던지... 이제 생각해 보면 처음 시작하는 흰 띠이니 보고 따라하는 것조차 버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처음이라 긴장해서 몸에 갖은 힘을 다 주고 했으니 근육이 뭉칠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요. 그런데도 당시에는 나 혼자만 버벅대는 것 같아 참 민망하고 답답했죠. 그래도 운동을 하면 할수록 뭉친 근육이 풀리니 다행이었어요. 물론 밤마다 열심히 주물러주던 당신 손과 저주파 치료기의 힘도 컸구요. 후후. 그렇게 두어 달 지나면서부터는 팔다리에 조금씩 근육도 붙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탄탄해지는 근육들을 보면서 당신이 제일 좋아했었죠. 나이 들수록 근육이 많아야 건강하다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넉 달쯤 되었을까요? 성인부 심사 전날, 지훈이 심사를 보러 갔다가 나와 같은 품새를 하는 유소년부 친구를 보았네요. 그 애가 하는 것을 보면서 감전된 것처럼 찌리릿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어요. ‘아... 사범님들께서 강약을 주라는 게 저런 거였나 봐...’ 그리고 하루밖에 안 남았지만 머릿속으로 그 친구의 품새 느낌을 기억하며 열심히 따라해 보았지요. 그 연습 덕이었을까? 저도 믿기 힘든 두 띠 상승을 했어요!!! 어찌 이런 일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아이처럼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요...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그날 제 입가엔 하루 종일 미소가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발차기는 어렵고, 격파는 무서웠어요. 품새 역시 나날이 새로운 동작들이 나오면서 어려워졌고... 그렇게 암담해하며 수련하던 어느 날, 수련하다 문득 내 머리 속이 참 맑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태권도 동작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느낀 거죠. 하루 종일 지훈이 생각만 하던 저였는데, 지훈이 생각조차 안 난다는 사실... 놀랍기 그지없더군요. 그런 적은 지훈이 낳고 나서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조금씩 재미도 생겼어요. 흰 띠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옆차기와 뒷굽이 자세가 조금씩 안정되는 걸 보면서 나 스스로가 너무 신기했거든요. ‘어? 이게 나도 되네?’ 하는 느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멋진 일이었죠. 그것도 ‘마흔 넷’이라는 나이에 말이예요.
자신감 페스티발 직전, 주황 띠 심사 때니까 근 일 년쯤 되었을까요? 오랜만에 심사를 보러 온 당신이 그랬어요. “태은아, 태권도할 때 네 눈빛이 평소랑 다르게 아주 매섭더라. 진짜 무술 하는 사람 같았어. 멋져.”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모를 거예요. 어른도 아이들처럼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은 건 똑같더라구요. 그 즈음부터 당신은 지인들에게 내가 태권도를 한다는 것을 많이 자랑하고 다녔던 것 아시나요? 그것도 나를 바로 옆에 두고... 후후. 부끄러우면서도 그게 싫지는 않았던 걸 보면 나도 서서히 태권도를 하는 내가 좋아지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어요.
고마운 당신... 심사 때마다 내가 정말 많이 행복했던 거 모르죠? 나를 도장에 바래다주며 걱정 가득한 눈으로 “조심해서 잘 하고 와. 올 때 택시 타면 바로 전화하고, 택시번호 문자로 남겨야 해!!!” 하며 내가 현관에 들어갈 때까지 그 앞을 떠나지 못하던 당신.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성인부 심사를 늘 못마땅해 하던 지훈이도 정작 심사 시간이 되면 차창에 매달려 쉼없이 손을 흔들며 당신과 똑같은 얼굴과 표정으로 한 마디씩 거들었죠. “엄마, 잘 해야 돼! 사랑해!!” 아... 매번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태권도하는 내 모습을 나보다 더 소중히 여겨주는 당신과 지훈이가 있어 나는 진정 행복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승단식 후 내게 부탁한 말... “태은아, 이제는 태권도할 때 마음 수련도 같이 하면 더 좋을 것 같애. 나는 네가 쉽게 상처받지 않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지면 좋겠어.” 그래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장장 두 페이지에 걸쳐 쓴 지훈이의 일기도 잊지 못할 거예요. 엄마가 승단식에서 품새도, 실전기 품새도 잘 해서 자랑스러웠다는 아들, 다음 번 승단식에서는 자신도 엄마처럼 잘 할 거라 다짐하는 아들... 그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계속 열심히 하고 싶네요.
오늘 드디어 검은 띠를 매고 수업에 다녀왔어요, 짜잔~~ . 새로 받은 도복은 영 내 몸에 설고, 검은 띠는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묵직했어요. 내 몸처럼 착 달라붙게 된 옛 도복과 빨간 띠가 그립더군요... 그렇게 또다시 흰 띠 때처럼 뭔가 어색한 느낌으로 수업을 했죠. 처음으로 앞축 격파 연습을 하는데, 휴우... 역시나 많이 어렵더군요... 1단의 다짐처럼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인 거죠. 잘 해낼 수 있다고 큰소리는 못 치겠어요. 예전처럼 당신한테 엄살도 계속 피울 것 같구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신과 지훈이의 응원을 등에 업고 나는 또 뚜벅뚜벅 걸어 나갈 거예요.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 길 위에 같이 땀 흘리며 수련하는 분들이 계시고, 손잡고 이끌어 주시는 지도진들이 계시니까 든든한 마음으로... 당신도, 지훈이도 지금처럼 쭉 지켜봐 주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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